[신안] 100년 전 장산도에서 울려퍼진 함성 재현
[신안] 100년 전 장산도에서 울려퍼진 함성 재현
  • 정거배 기자
  • 승인 2019.03.2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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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ㆍ목포 만세운동보다 앞서 일어나

 

신안군은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 희생했던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장산도 3.18 만세운동 기념식과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는 박우량 군수를 비롯해 군의회 김용배의장과 군의원, 장병준기념사업회 장하진 회장, 장산면민, 학생 등 300여명이 참여해 독립선언문 낭독과 헌화, 만세행렬 재현, 극단 갯돌의 재현극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어 100년전 장산도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산도 거리를 행진했고, 이를 제지하는 일본 경찰에 저항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장병준 생가 안마당에서 펼쳐진 극단 갯돌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재현극을 관람하며 선조들의 독립의지를 되새겼다.

장산도 3.18만세운동은 신안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장병준(張炳俊; 1893~1972) 선생 주도로 일어난 운동으로, 서울의 3.1만세운동 이후 바다 건너 섬 지역인 장산도의 3.18 만세운동은 무안(3월19일), 목포(4월8일) 만세운동 보다 앞서 일어났다. 이후 일어난 암태도소작쟁의를 비롯해 하의3도, 자은도, 도초도 등 도서지역의 농민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장병준 선생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으로 만주와 연해주의 독립운동 단체 통합에 주력하는 등 비밀활동을 하다가 국내로 들어와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이후 선생은 목포지역 신간회를 이끄는 주축이 되어 민족운동의 통합을 주도하고, 해방 이후 민주화 운동에도 헌신했다. 또한, 그의 동생 장홍재, 장홍염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었다.

독립운동가로 제헌국회 의원으로 활동하는 등 장산도의 장씨가문은 독립운동과 한국전쟁 참전, 민주화 운동 등에 적극 참여한 호남의 명문가이다.

이날 박우량 군수는 기념식에서 “100년 전 오늘은 작은 섬 장산도에서 자주 독립을 향한 열망과 애국심을 결연히 외친 역사적인 날” 이라며, “선열들의 저항정신을 물려받은 우리는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섬을 이제 국가정책의 중심에 올려놓는 중요한 시점을 맞이하고 있어 더욱 힘을 모아 희망과 행복이 넘치는 미래의 신안 100년을 이뤄나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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