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기고]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 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박수지
  • 승인 2019.08.14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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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이 날은 우리나가 주권을 빼앗기고 탄압을 받아왔던 긴 암흑기를 지나 빛을 되찾았던 역사를 기억하고, 나 자신을 품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새삼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1945년 8월 15일, 백범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우리 민족의 강한 열망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라는 국제적인 환경이 맞물려 마침내 우리 민족은 독립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고 그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관념적으로 독립된 상태에 주체를 불어넣었으며 그 움직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날을 기념해 각 가정에서는 태극기를 게양하고, 기념식에서는〈광복절의 노래〉가 연주된다.

또, 티브이에서는 일제 강점기 역사 그리고 광복절과 관련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제해 방영하는 등 탄압의 어둠과 광복의 빛을 번갈아 되새기며 광복의 역사를 기억하게 만든다.

그리고 일흔네번째 광복절을 맞이하는 지금, 수많은 독립유공자와 그 가족들이 개인의 안위를 뒤로한 채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도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갈망했음을 우리는 동시에 잊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독립에 대한 열망과 그 지대한 노력은 오늘날 몇 페이지의 공적과 한줌의 훈장으로 남아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의 훈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에 국가보훈처에서는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으나 후손이 확인되지 않아 훈장을 전달하지 못한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는 <독립유공자 후손찾기운동>을 추진 중이다.

현재 아직 그 후손을 찾지 못한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는 5,700여명에 달한다. 이 중 대다수는 본적이 불분명하거나 북한을 본적으로 두는 등의 이유를 갖고 있다.

그중에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신분이 노출되어 가족들이 감시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족보에서 흔적을 지우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의 독립을 실천하려했던 그들의 공적을 희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높은 남한 본적자에 대하여는 2018년도부터 본적지 현지 조사를 실해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의 후손 찾기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 국외지역에서도 독립유공자 후손을 찾기 위해 미전수 인원이 다수 분포돼 있는 중국 동북 3성지역에서 현지 언론을 활용해 후손찾기운동을 알리는 등 국외 후손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훈장 미전수 독립유공자의 명단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공훈전자사료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로 문의하면 된다.

조국 광복의 순간까지 묵묵히 독립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당시의 투사들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만의 독립이 아닌 모두의 그것이라는 대의를 위해 고군분투한 과거의 영웅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헌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들의 의무이며, 독립유공자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빛을 되찾다’라는 광복의 뜻을 이어받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조용히 후손을 기다리고 있는 5,700여개의 훈장도 각각의 빛을 되찾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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