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주년 광복절에 소개하는 독립운동가
제75주년 광복절에 소개하는 독립운동가
  • <기 고>전남서부보훈지청 보훈과 김민식
  • 승인 2020.08.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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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8월 15일 광복절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우리는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위해 죽음도 불사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항일독립운동가 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응답으로 김구(23.8%), 안중근(22.8%), 유관순(11.1%), 윤봉길(9.6%), 안창호(5.0%) 순으로 상위 5명이 무려 72.3%를 비율을 차지했고, 모름·무응답의 비율은 18.3%로 나타났다.

상위 5명에게 집중된 70% 상회하는 비율과 모름·무응답 18.3% 비율을 고려하면,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공적에 비해 상대적인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제75주년 광복절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국권 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의 희생을 기리고 알리기 위해 선정하고 있는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2020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석영 선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석영 선생은 8대에 걸쳐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의 일원으로 1885년 과거에 급제해 고종을 측근에서 보필하기도 했고, 양부에게 1만여석 넘는 전장을 상속받은 대부호였다.

당시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세를 불리던 친일파 권력가, 부호들과 달리 이석영 선생은 1910년 이회영, 이시형 등 6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독립군 기지 개척 등 독립운동을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해 서간도로 망명했다.

선생의 재정지원으로 1911년 서간도에 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가 설립됐으며, 농업개발, 민족교육, 군사교육을 실시해 국구인재를 양성, 무장항일 투쟁을 전개하고자 했으나 1911년과 1912년 연이은 대흉년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부딪히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선생이 기부한 자금으로 신흥무관학교 전신인 신흥강습소가 설립됐고 1920년까지 3,5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군의 근간을 이루며 독립전쟁사에 찬란한 자취를 남겼다.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치고 독립군 양성의 초석을 마련한 선생은 노후에 끼니조차 잇기 힘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1934년 상하이 빈민가에서 생을 마쳤다.

독립운동은 집안의 희생과 몰락을 각오하고 나서야만 했던 가시밭길이었지만,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선생과 6형제들의 삶과 자취는 광복절을 맞아 우리가 떠올리고 감사해야할 독립운동의 정의와 양심이 아닐까?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모두를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부디 이석영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정의와 양심만큼은 잊지 않고 이어나가 더욱 건강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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